No.026

[심층보도] “출근해서 싸우는 게 일” … 정부, ‘가짜 회사’ 만들어 인간 소일 복지

생산성 제로(0), 업무는 AI가 처리 … 인간은 갈등과 화해 반복하는 ‘심리 복지’ 프로그램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한층 교묘해진 형태 … 일부 간파한 이들에게 조롱받아도 대다수는 ‘가짜 삶’ 연기
[서울=호호일보]

[2031년 3월 21일 경기 세종 종합 복지 단지]

오전 9시, 세종시 외곽에 위치한 ‘늘푸른 사회 통합 지원 센터’ (약칭 늘푸른 센터)로 직장인들이 분주히 출근한다. 겉보기엔 여느 대기업의 사옥과 다르지 않다. 세련된 로비, 사원증을 찍는 게이트,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리는 모습까지. 그러나 이 건물의 지하 1층부터 지상 8층까지를 가득 채운 1,200명의 직원 중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들은 정부가 고안한 ‘가짜 회사’의 직원들이며, 그들의 공식 업무는 ‘서로 아웅다웅 갈등하고 화해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2029년 전국적으로 시행된 ‘기본소득 보장법’ 이후, 생산 효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인공지능(AI) 기반 자동화 시스템이 사회의 모든 부를 창출하게 되면서 인간의 노동은 설 자리를 잃었다. 모든 국민에게 충분한 소득이 제공되자 역설적으로 ‘할 일이 없는 인간’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다. 우울증, 자살률 상승, 사회적 고립, 목적의식 상실로 인한 범죄율 증가가 사회 기반을 흔들었다. 이에 정부는 ‘일의 생산성’이 아닌 ‘노동이라는 행위 자체’에서 얻는 심리적 안정감과 사회적 관계성에 주목했다.

‘늘푸른 센터’는 이 새로운 ‘심리 복지’ 개념의 결정체다. 이곳의 모든 업무는 철저히 조작된 것이다. 직원들은 오전 내내 무의미한 데이터를 입력하거나, 실존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위한 기획안을 작성한다. 하지만 이 기획안은 검토되지 않고 버려진다. 진짜 업무는 AI 수석 부장이 수십 조분의 1초 만에 처리한다. 이들의 실제 역할은 사무실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의 드라마다.

업무는 핑계일 뿐, 진짜 ‘일’은 ‘갈등과 소통’

취재팀이 참관한 마케팅 3팀의 ‘가짜 회의’ 현장은 치열했다. 주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AI 스피커 브랜드 네이밍’. 김철수(54세, 가명) 과장은 이영희(31세, 가명) 대리에게 고성을 질렀다. “이 대리, 디자인 시안이 이래서야 시장 경쟁력이 있겠어? 젊은 감각이라고 다가 아니야!” 이 대리도 지지 않았다. “과장님, 그건 2020년대 마인드죠. 지금 트렌드는 ‘뉴-미니멀’입니다. 세대 차이 극복 못 하시면 은퇴하시죠!”

이들의 대화는 마치 진짜 직장 생활의 애환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임무다. 이 갈등은 오후가 되면 팀장의 중재와 회식을 통해 화해의 퍼포먼스로 마무리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소속감, 성취감, 그리고 타인과의 연결감을 얻는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전문가, “효율 아닌 생존을 위한 역설적 복지”

정부의 이 같은 파격적인 복지 정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찬반이 엇갈리면서도 그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국가미래사회연구소의 박민지 박사는 “AI 시대의 복지는 물질적 충분함을 넘어 심리적 생존을 지원하는 형태로 변해야 한다.”라며, “‘가짜 회사’는 인간에게 사회적 지위와 목적의식을 가짜로라도 제공하여 정신적 붕괴를 막는 최후의 안전장치”라고 분석했다.

반면,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최현우 교수는 “이것은 트루먼 쇼와 다를 바 없는 거대한 속임수다.”라며, “과거에도 있었던 형태지만, 기본소득 시대에 맞춰 한층 더 조직적이고 그럴듯하게 포장된 ‘정신 승리’ 복지다. 인간을 무의미한 햄스터 쳇바퀴에 가둬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알아도 모르는 척, ‘가짜 삶’을 선택한 사람들

이 정책의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이 ‘가짜 회사’의 정체를 눈치챈 일부 직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은밀하게 소셜미디어나 익명 커뮤니티에서 이 정책을 ‘정부 주도의 정신병동 연기 학원’이라 조롱한다. 하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여전히 아침마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근한다.

늘푸른 센터에서 3년째 ‘회계 팀장’ 역할을 연기 중인 장모 씨(43세)는 취재팀의 질문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내가 대체 뭘 하는 거지?’ 싶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곳을 나가면 나는 무의미한 우주의 외로운 떠돌이가 된다. 여기서 사람들과 싸우고,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부하 직원 눈치를 보는 것만이 나를 ‘사람’으로 느끼게 해준다.”

그는 이어 말했다. “이것이 가짜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이 가짜가 주는 안정감이 내 진짜 삶보다 더 진짜 같다. 나는 그냥 끝까지 속아주는 척 연기할 생각이다.”

그의 말처럼, 수많은 이들이 알아도 모르는 척,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존재 이유를 ‘가짜 일’에서 찾고 있었다. 그것이 2031년, 기술에 영혼을 뺏긴 인류가 선택한 가장 슬프고도 지독한 복지의 모습이다.

※ 이 기사는 2026년 시점에서 작성된 2031년 가상 기사입니다. 사실과 가능성의 경계는 독자의 판단에 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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