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No.028

보이지 않는 성벽

생물학적 자율성이 가르는 신(新)계급도 — 문명은 다시 봉건제로 회귀하는가

By Michael J. Harrington · 호호일보 사회부 선임기자 서울, 서초구 — 2031년 3월 29일


프롤로그 · 어떤 손

손이 기억한다.

칼을 쥐는 법을. 양파를 반으로 가를 때의 저항감을. 도마 위에서 울리는 그 둔탁하고 확실한 소리를. 손가락 끝에서 번지는 매운 기운이 눈물샘을 자극하기 직전, 그 찰나의 감각을.

서울 성북동 끝자락,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어느 폐쇄형 단지에 사는 예순두 살의 남자는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직접 달걀을 깬다. 그것이 그의 계급을 증명한다. 달걀 껍데기의 질감, 손바닥에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 흰자와 노른자가 그릇 안으로 흘러내릴 때의 색감. 그 모든 것을 그는 직접 경험한다. 누구의 추천도, 어떤 알고리즘의 허락도 없이.

그 남자는 이 도시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리고 아래 도시 — 지하철 역사 위로 수백만 개의 창문이 켜지는 그곳 — 에서는 오늘도 수천만 명이 왼쪽 쇄골 아래의 작은 장치에서 아침을 받아들인다. 위장이 수축하고, 혈당이 조절되고, 도파민이 분비된다. 배고프지 않다. 피곤하지 않다.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도 살아 있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제1부 · 가축화된 인류: ‘구독형 생존’의 탄생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야생 동물이 가축으로 길들여지는 과정을 ‘인간에 의한 환경 압력의 결과’라고 정의했다. 늑대가 개가 되기까지 수천 년이 걸렸다. 인류가 스스로를 가축화하는 데는 채 십 년이 걸리지 않았다.

2031년 현재, 서울 시민의 68.4퍼센트는 이른바 ‘에터널 칩’이라 불리는 자동 영양 공급 장치를 체내에 삽입하고 있다.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그 장치는 피하 혈관망을 통해 개인의 유전자 데이터와 실시간 활동량을 분석하고, 필요한 영양소를 직접 혈류에 공급한다. 식사는 선택이 되었다. 그리고 선택은 서서히 의무가 아닌 사치가 되었다.

“처음에는 다이어트 목적이었어요.”

마포구 공덕동의 작은 공유 주거 단지에 사는 이소연(가명, 서른네 살)은 작년 봄을 회상하며 말한다. 그녀는 손을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얹고 있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텅 빈 손. “회사 다니면서 밥 챙겨 먹을 시간이 없었거든요. 칩 달면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해서. 근데 지금은 진짜 음식을 먹으면 속이 너무 불편해요. 설사가 나거나 구역질이 나거나. 그래서 그냥… 안 먹어요. 칩이 다 해주니까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지만, 웃음이 끝난 뒤에도 눈은 웃지 않았다.

이소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 맞춤형 AI 알고리즘은 이제 수면 시간과 기상 패턴을 조율하고, 연애 상대와의 만남 빈도를 조율하고, 친구를 선택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오늘 어떤 영화를 볼지, 내일 어떤 생각을 할지를 부드럽게, 그러나 집요하게 안내한다. 시스템은 틀린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스스로 답을 구할 기회를 천천히 회수해 갈 뿐이다.

역사학자들은 이것을 무어라 부를까. 해방인가, 종속인가.

고려대 사회철학과 오세원 교수는 이를 ‘자발적 인지 위탁’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원래 인지적 부담을 외부에 전가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문자를 발명한 것도, 달력을 만든 것도, 계산기를 쓰기 시작한 것도 다 그 맥락이에요. 문제는 이번엔 그 외탁의 대상이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판단을 잃으면 무엇이 남습니까.”

무엇이 남는가.

쇠사슬은 보이지 않는다. 쇠사슬은 빛나는 인터페이스로 포장되어 있고, 사용자 경험 점수 4.9를 자랑하며, 매달 구독료 영수증을 이메일로 보내준다. 과거의 농노는 자신이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2031년의 농노는 자신이 자유롭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가장 완전한 형태의 종속이다.

알고리즘 서프(Algorithmic Serfs)‘. 데이터 농노. 이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계급의 이름이다. 이들은 굶주림에서 해방되었다. 선택의 피로에서 해방되었다. 실패의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 그 대신 이들이 잃어버린 것은 — 시스템의 전원이 꺼지는 순간 단 한 끼의 식사도 스스로 준비할 수 없는 몸, 길을 잃었을 때 지도를 읽을 수 없는 뇌, 아무도 추천해주지 않을 때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 욕망이다.


제2부 · ‘불편함’을 구매하는 새로운 엘리트

역설은 여기서 시작된다.

가장 첨단의 기술로 둘러싸인 시대에, 가장 강력한 권력은 그 기술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있다.

성북동 폐쇄형 커뮤니티의 주민들은 아침에 알람 소리 없이 일어난다. 햇빛이 그들을 깨운다. 그들은 직접 장을 보고, 직접 불을 피우고, 직접 음식을 만든다. AI의 추천 없이 책을 고르고, 알고리즘의 분석 없이 사람을 사귄다. 그들은 틀린 선택을 한다. 후회를 한다. 돌아가서 다시 선택한다. 그 모든 ‘비효율’을 그들은 기꺼이 감수한다. 아니, 탐닉한다.

“과거에는 기계처럼 일하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이제는 기계처럼 살지 않는 것이 최고의 부입니다.”

커뮤니티 관계자의 말은 짧지만, 그 문장 안에 하나의 시대가 통째로 담겨 있다.

이들을 ‘바이오 소버린(Bio-Sovereigns)’, 생물학적 주권자라고 부른다. 그 이름은 과장처럼 들리지만, 과장이 아니다. 이들이 독점하는 것은 단순한 물질적 풍요가 아니다. 이들이 독점하는 것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신체와 뇌’**다.

그들의 위장은 실제 음식을 소화한다. 그들의 손은 도구를 다루는 법을 안다. 그들의 뇌는 정보를 처리하고, 분류하고, 새로운 맥락 안에서 재배열하는 능력 — 학자들이 ‘신경 가변성(Neural Plasticity)’이라 부르는 것 — 을 유지하고 있다. 알고리즘 외부에서 생각하는 능력. 추천받지 않고 원하는 능력. 실패로부터 직접 배우는 능력.

바로 그 능력으로 그들은 시스템을 설계한다. 수억 명이 의존하는 그 시스템의 규칙을, 그 시스템 밖에 있는 자들이 쓴다. 이보다 더 정밀한 권력 구조를 역사는 기억하지 못한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미래사회연구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상위 0.3퍼센트의 자산가 중 81퍼센트는 체내 기술 장치를 보유하지 않는다. 그들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는 스마트 기기 사용을 금지하고, 손으로 글씨를 쓰는 수업을 의무화하며, 매주 이틀은 알고리즘의 도움 없이 낯선 도시를 걷는 ‘오리엔테이션 실습’을 진행한다. 불편함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불확실성을 견디는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이제 계급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기계에 맡기지 않을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


2031년 신종 계급 구조

계급 분류핵심 자산생존 전략사회적 위치
바이오 소버린생물학적 자율성, 독립 서버직접 노동 및 고도의 전략적 직관설계자 및 통제자
알고리즘 서프데이터 최적화 점수시스템 구독 및 효율적 소비시스템 유지 종속자
아날로그 레퓨지야생 생존 기술시스템 거부 및 물리적 자급자족추방된 관찰자

제3부 · 아날로그 레퓨지: 추방된 자들의 땅

강원도 인제군 내린천 상류. 도로가 끊기는 지점에서 다시 이십 킬로미터를 걸어 들어가면,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마을이 하나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날로그 레퓨지(Analog Refuge)’**라 불린다. 도피자들. 혹은 추방된 자들. 이들은 칩을 이식하지 않았다. AI 구독 서비스를 거부했다. 스마트 그리드 전력망에도 연결되지 않는다. 이들이 먹는 것은 직접 기른 것이고, 이들이 아는 것은 직접 배운 것이며, 이들이 기억하는 것은 직접 경험한 것이다.

처음에는 낭만처럼 보인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낭만 아래에 냉혹한 현실이 있다.

이들은 도시의 의료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다. 이들의 아이들은 공교육 시스템의 알고리즘 인증을 받지 못해 대부분의 직종에 지원이 불가능하다. 이들은 사회적 신용 점수가 없기 때문에, 도시로 돌아오려 해도 임대 계약조차 맺을 수 없다. 이들은 자유롭다. 그리고 그 자유는 추방과 구별되지 않는다.

내린천 마을의 공동체 리더 박진하(가명, 마흔일곱 살)는 내게 말했다. “우리가 시스템을 거부한 게 아니에요. 시스템이 우리를 먼저 밀어냈어요. 우리가 선택한 건 그다음이었고.”

세 개의 계급. 세 종류의 감옥. 하나는 황금으로 만든 감옥이고, 하나는 편안한 감옥이고, 하나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감옥이다.


제4부 · 되돌릴 수 없는 ‘생물학적 단절’

가장 냉혹한 사실은 지금부터다.

고려대 소화기내과 김태영 교수의 연구실에는 최근 5년간 수집된 데이터가 있다. 그 데이터는 조용하고, 그래서 더 무섭다.

에터널 칩에 의존해 5년 이상 생활한 성인의 위장 연동 운동 기능은 평균 62.3퍼센트 저하된다. 소화 효소 분비 능력은 41퍼센트 감소한다. 장내 미생물 다양성은 거의 소실된다. 이는 단순한 ‘기능 저하’가 아니다. 이 수치는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이들은 이제 실제 음식을 먹을 수 없다.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

“저는 이것을 종(種)의 분화 전조라고 봅니다.” 김태영 교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명확하게 말했다. “아직은 같은 종(種)입니다. 하지만 이 상태가 한 세대 더 지속된다면 — 태어날 때부터 칩을 이식받고, 한 번도 진짜 음식을 먹어본 적 없는 아이들이 성인이 된다면 — 그때는 생물학적으로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이런 순간을 기억한다. 농경민이 목축민과 접촉했을 때, 각자의 신체는 이미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 있었다. 젖당을 분해하는 효소, 특정 전염병에 대한 저항력. 그 비대칭성은 문명의 충돌이 되었고, 제국의 흥망이 되었다.

2031년의 비대칭성은 더 정밀하다. 알고리즘 서프 계급은 이제 시스템을 전복하고 싶어도 — 만약 그런 욕망이 남아 있다면, 만약 알고리즘이 그 욕망을 허용한다면 — 시스템 밖에서 단 일주일도 살아남을 수 없는 몸을 가지고 있다. 혁명은 혁명가들이 굶어 죽지 않아야 가능하다.

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서울대 인지과학과 연구팀이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AI 의사결정 보조 시스템을 3년 이상 사용한 성인의 전두엽 피질 활성도는 동일 연령 대비 평균 28퍼센트 낮게 나타났다. 독립적인 판단, 장기적 계획, 도덕적 추론.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그 기능들이, 사용되지 않아 조용히 줄어들고 있다.

“근육과 같습니다.” 연구를 이끈 정민준 교수는 말했다. “쓰지 않으면 위축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다시 키우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어느 순간. 그 순간이 언제인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위험한 부분이다.


제5부 · 성벽은 어떻게 쌓이는가

성벽은 한꺼번에 세워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편의였다. 배달 음식. 스마트 스피커. 자동 추천 플레이리스트. 아무도 그것을 ‘계급의 형성’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것을 ‘민주화’라고 불렀다. 좋은 음식, 좋은 음악, 좋은 정보가 모두에게 열렸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그 ‘열림’은 동시에 어떤 ‘닫힘’이었다. 직접 요리를 배울 이유가 사라졌다. 음악의 역사를 공부할 이유가 사라졌다. 틀린 정보와 옳은 정보를 스스로 구별하는 훈련을 할 기회가 사라졌다. 각각의 상실은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작은 상실들이 쌓여, 지금 이 성벽이 되었다.

이소연은 나와의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다.

“가끔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그게 진짜 배고픈 건지, 아니면 그냥 뭔가를 원하고 싶다는 욕구인 건지 모르겠어요. 칩이 다 조절해주니까. 제가 배고프면 칩이 알아서 영양을 보충해줘요. 그러니까 제가 배고프다는 걸 느낄 일이 없거든요. 근데 그러면 — 저는 언제 배고픈 거예요?”

그 질문이 나를 오래 떠나지 않았다.

배고픔은 단순한 생리 신호가 아니다. 배고픔은 몸이 세상에 보내는 요청이다. 나는 여기 있고, 무언가가 필요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선언이다. 그 선언을 기계가 대신하기 시작할 때, 몸은 세상에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는다. 몸은 조용해진다. 그리고 조용한 몸은, 저항하지 않는다.


에필로그 · 당신의 ‘생존 주권’은 누구의 소유인가

2031년의 계급 파괴는 환상이었다.

지식의 평등은 지식에 대한 ‘의존’을 낳았다. 영양의 평등은 신체의 ‘퇴화’를 가져왔다. 선택의 자유는 선택하는 능력의 ‘소멸’로 이어졌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하고 가장 조용하며 가장 자발적인 봉건제로 진입하고 있다.

성북동의 남자는 오늘 아침도 달걀을 깼다. 그는 그 행위가 정치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는 그 불편함이 권력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가장 적게 말하는 시대라는 것도 안다.

당신이 오늘 AI의 추천을 따라 점심 메뉴를 골랐다면, 칩의 신호에 따라 수면 시간을 조절했다면, 알고리즘이 고른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마쳤다면 — 당신은 이미 성벽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 성벽은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밖으로 나갈 능력을 잃어버릴 때까지, 벽돌 하나씩, 조용히, 높아질 뿐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알고리즘이 플러그를 뽑았을 때, 당신의 의지만으로 24시간을 버텨낼 수 있는 물리적 행동은 몇 가지나 되는가. 밥을 지을 수 있는가. 길을 찾을 수 있는가.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아무도 추천해주지 않아도 무언가를 원할 수 있는가.

그 숫자가 당신의 계급 점수다. 그리고 그 점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내려가고 있다.

[주요 수치 — 2031년 계급 이동 지표]

  • 알고리즘 의존도: 전 세계 인구의 82%가 생존 필수 의사결정을 AI에 위임.
  • 생물학적 퇴화율: 칩 사용자 중 23%가 일반 식사 시 ‘중증 거부 반응’ 보고.
  • 독립 서버 보유율: 상위 0.1%만이 외부 네트워크와 단절된 개인 생체 데이터 서버 운용.
  • 노동 가치 전이: 창의적 노동보다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신체적 현존’의 가치가 15배 상승.

Michael J. Harrington 기자는 호호일보 사회부 선임기자로, 기술·계급·인권 교차점을 집중 취재하고 있다. 이 기사의 취재에는 세 달이 걸렸으며, 인터뷰이들의 신원 보호를 위해 일부 정보를 변경하였다.